남아서 견디는 작은 일원들 쪽으로 : 정다연 시인의 시, 「홀」 읽기_윤은성

관리자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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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서 견디는 작은 일원들 쪽으로

: 정다연 시인의 시, 「홀」 읽기

(윤은성🌿 )

시인, 활동가, 문학 연구자.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기후위기 기독인연대'에서 활동한다. 시집 『주소를 쥐고』, 

시론서 『아직 오지 않은 시』(공저) 등을 펴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우산을 펼친다 넘치는 인파와 쓰레기,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을 쪼는 비둘기떼 사이에서 퍼지는 하수구 냄새


  상상한다 깨끗하게 삼켜질 이 도시를


  비둘기 한 마리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비둘기와 나는 사이좋게 병든 것 같지만 이런 생각은 실례 같다 날개가 있었다면 나도 빗물에 씻겼을까 안전선이 둘러진다


  불탄 잔해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파고 부수고 파고 부수고 이미 다 부서졌는데, 무엇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걸까


  나는 비껴간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로부터, 도시로부터 멀리 더 멀리 극도로 비껴가고 싶은데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가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하면 어떨까요?


  벽 앞에 선 소년을 티브이에서 보았다 광장에서 우산을 펼쳐 든 채, 소년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거대하게 제 안을 불태우며 중력을 견디는 항성처럼


  폭발한다


  어떤 충돌은 반드시 우리에게 닿는다 십억년이 지나서도, 온 우주를 파장으로 뒤덮으며

  안으로 무너진다 더 작게, 아주 작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될 때까지 폭발을 멈추지 않는다


  우산을 접는다


  오늘은 비를 막았다

  내일은 이것으로 무엇을 막을지 알 수 없다


  기어코

  소년의 등을

  적시고야 마는 빗방울


  터지며

  함께 삼켜지는


  빛,


  밖에서 보면 텅 빈 어둠일 것이다

  그러나 안이라면


- 정다연, 「홀」(『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 2021) 전문.



기후생태위기 주제의 시를 소개해보기로 하면서 떠오른 몇 작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글을 시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기후생태위기를 마주하는 지금, 시에 표현된 문장으로서의 현실이 과연 구체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알려줄지 염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시를 소개해야 하는데 이 시대에 시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상황은, 그리고  지구 공동체 속 구체적인 일원들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뉴스 영상에서 보았던,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인해 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 그리고 유가족들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했던 산사태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시던 그 참담한 표정 말입니다. 


*


자주 꺼내보는 시집이 있어요. 다정하지만 날카로운 시집인데요. 참담함을 외면하지 않고 시 속 장면으로 그려내며 성찰하고, 또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 안간힘을 쓰는, 정다연 시인의 첫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창비, 2021)가 바로 그 시집입니다. 기후생태위기를 포착하는가 하면, 역사 속 전쟁과 폭력이 남긴 상처가 얽히고설켜 지금까지 남아서 긴장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사안들을 주제로 한 시들이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역사적으로 배제되어온 이들이 받아온 억압과 사회의 관습을 해체하기도 하고요. 비인간 동물과의 관계를 아프게 돌아보기도 해요. 강자로서의 인간, 그리고 인간 중심주의를 살피며 용감하게 펼쳐나가는 이 시집 속에는 다양한 폭력에 관한 절박한 사유가 나타나는데요. 읽다 보면 그만큼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다 껴안지 못할 이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어떻게 사랑이란 것을 하며 살아볼 수 있을까요. 이 시집은 그와 같은, 고통을 함께 껴안고 “끝까지” 가보자는 말을 용감하게 감행하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인용한 시 <홀>에서는 폭우 쏟아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이 야기한 기후재난에 대한 고통 어린 감정과 관점을 펼쳐 보여줍니다. 비가 오면 거리의 더러움은 더 잘 눈에 보이게 되지요. 비가 오면 감각은 맑은 날보다 더 잘 열리는 듯합니다. 1연에는 거리를 채우고 있는 쓰레기와 악취 등 불쾌함을 유발하는 것들이 나열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배출한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에서는 묻습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 현장에 안전선이 설치되는 것을 보고서 “이미 다 부서졌는데, 무엇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걸까”라고요. 이미 지구의 상황이 이전으로 돌아갈 회복력이 유효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도 듣게 되는 지금, 재난 상황을 바라보는 화자의 목소리는 사후에야 일을 처리하는 데에 급급한 우리 사회의 행정력과 기후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고 회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는 회의에서 멈추지 않고, 꼭 공유해야만 했을 장면, 꼭 말해야 했을 장면을 찾아 보여줍니다. 바로 광장에 서 있는 우산을 쓴 소년 말입니다.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기후변화에 관심 갖고, 청소년 기후행동을 조직해 기후위기를 경고해 온 ‘그레타 툰베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소년은 혼자서 기후정의 파업에라도 나선 것일까요. 우산 하나를 든 채 말입니다. 소년은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묻습니다. 또, 서로를 구하지 않고, 참담한 상황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지려는 이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소년은 광장을 지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지키자고 말하면서, 한편으론 천진하게 또 한편으론 “항성”처럼 단단하게 견디면서 말입니다. 소년이 연약한 우산에 기대어 외치는 것처럼, 이 소년에게 기대어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 위해 모이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바로 여기에서 저는 큰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정말 더 마음과 행동을 모아봐야 하지 않을까.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작고도 큰 힘을 희망이라고 감히 말해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오늘의 비를 우산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내일은 이것으로 무엇을 막을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더 암담한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일 텐데요. 어쩌면 폭우로 인한 피해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바로 지금이 이 시에서 말한 더욱 절망스러운 “내일”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


저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해석하는 것이 까다로워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시는 후반부에 이르러 “터지며 / 함께 삼켜지는 // 빛,”이라는 문장에서 볼 수 있듯 미래의 더 극단적인 장면을 상상해 보여줍니다. 상상하기에 겁까지 나는, 지구가 “터지”는 장면 말입니다. 물론 이같은 장면은 SF 영화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는 있지만, 솔직히 그와 같은 순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일 텐데요. 


이 시에서의 “터지”는 이미지가 말해주는 것은 ‘종말’이나 ‘멸망’, 또는 ‘소멸’과 같은 암담한 미래가 아닙니다. 물론 지구는 우주 저 먼 곳에서 봤을 때 수많은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구 종말이라는 게 별의 생성과 소멸의 한 과정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는 이해가, 또 동시에 기독교를 비롯한 종말론적 종교의 세계관에 부합한다는 이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만, 이 시가 말하는 건 멀리서 본 지구가 아니라 “안”쪽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땅 위에서 “소년”처럼 견디면서, 비록 작은 목소리이더라도 외치고 있는 몸이 있는, 바로 그 “안쪽” 말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바로 지금 기후재난 상황에서 쉽게 회의만 하는 데에 머물 수도, 과학적·종교적 종말로 초월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에 남아 견디는 작은 일원들 쪽으로 우리는 옮겨갈 수 있으니까요. 각자가 서로에게, 서로를 끌어당겨 함께 견디게 하는, 폭발적인 빛과 같은 힘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때의 빛은 ‘폭발하는’ 종말로서의 빛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게 하는 우리의 ‘폭발적인’ 빛일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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